


회생·파산 전문 변호사 김민수
법무법인 김앤파트너스는 형사, 도산, 행정, 이혼, 건설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최상의 결과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법무법인 김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서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하며 쌓아 온 노하우와 법인·개인파산관재인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뢰인께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겠습니다.
필진 글 더보기![[10억 전액면책] 주유소 폐업 뒤 찾아온 대수술, 법원의 회생 전환 권고까지 넘어선 개인파산](/_next/image?url=https%3A%2F%2Fcms-revival.kimnpartners.co.kr%2Fwp-content%2Fuploads%2F2026%2F08%2F2022%ED%95%98%EB%8B%A8104483.png&w=2048&q=75)
9년간 운영한 주유소를 코로나로 폐업하고 대동맥박리 수술로 근로능력까지 잃은 의뢰인. 법원의 개인회생 전환 검토 요구를 산재연금 소명으로 방어하고 서울회생법원에서 채무 10억 3,459만 원 전액 면책을 받은 개인파산 성공사례입니다.
회생·파산 전문 변호사 김민수
2026.08.24
![[전액 면책] 다섯 아이 아빠가 개인회생 두 번 무너진 끝에 되찾은 4억 3천 개인파산](/_next/image?url=https%3A%2F%2Fcms-revival.kimnpartners.co.kr%2Fwp-content%2Fuploads%2F2026%2F08%2F2022%ED%95%98%EB%8B%A8102146.png&w=2048&q=75)
개인회생 두 번이 기각·폐지되고 대여금 소송 패소로 2억 2천만원이 더 얹힌 40대 가장. 미성년 자녀 다섯을 부양하며 인천지방법원에서 총채무 4억 3,023만원 전액 면책을 받기까지의 개인파산 사례입니다.
회생·파산 전문 변호사 김민수
개인파산 사건을 보다 보면, 빚의 출발점이 ‘무리한 소비’가 아니라 ‘살기 위한 치료’인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고, 치료비는 소득이 끊긴 뒤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의뢰인은 1960년대 초반생 여성입니다. 2007년 두 신장이 모두 기능을 잃어 복막투석을 시작한 뒤, 하루 네 번의 투석을 10년간 이어왔습니다. 2017년 배우자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6개월 만에 거부반응이 왔고, 1년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그 사이 수술비와 입원비, 생활비가 쌓여 총채무는 4억 907만원이 되었습니다. 신청 당시 의뢰인 명의로 된 부동산도, 예금도 없었습니다.
의뢰인이 수원회생법원에서 개인파산 전액 면책을 받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의뢰인은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장녀로, 일찍부터 부모를 부양해왔습니다. 1991년 결혼했지만 임신중독증으로 첫 아이를 잃었고, 그 무렵부터 신장 기능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두 신장이 완전히 기능을 잃었습니다.
투석을 하면서도 손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과일과 냉면을 이고 다니며 행상을 했고, 카드사와 보험사에서도 일했습니다. 하루 네 번 투석액을 갈아 넣는 몸으로 생계를 이어간 1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2017년의 신장이식은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배우자가 자신의 신장을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거부반응이 나타났고, 이후 1년이 넘도록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수술비·입원비·생활비가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소득은 사실상 끊겼는데 나가는 돈만 커지는 구간이었습니다.
가정의 다른 축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배우자는 2012년 원청업체의 고의부도로 1억 원의 공사비를 받지 못한 채 사업을 접었습니다. 2015년 특허 제품으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이식 수술 이후 의뢰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간병과 병행이 어려워졌고 2019년 6월 사업을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의뢰인이 처음부터 파산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2018년, 본인 명의로 가지고 있던 지방 소재 농지를 담보로 마이너스 대출을 받았습니다. 빌린 돈은 사업 자금도, 투자금도 아니었습니다. 생활비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면역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나갈 수 없었고, 사회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소득은 완전히 끊겼습니다.
의뢰인은 담보로 잡힌 농지 일부를 손해를 보면서까지 매각했습니다. 갚을 수 있는 것은 갚아보려 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대출의 이자와 당장의 생활비는 그 돈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2022년 8월경 지급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신청 당시 의뢰인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본인 명의의 부동산도 예금도, 환가할 수 있는 재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살고 있는 집조차 본인 것이 아니라, 지인의 아파트에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 구분 | 금액 |
|---|---|
| 총채무액 | 409,078,488원 |
| 면책된 채무액 | 409,078,488원 |
| 남은 채무 | 0원 |
| 관할법원 | 수원회생법원 |
| 면책허가결정일 | 2025년 3월 10일 |

이 사건의 핵심은 “왜 이렇게 많은 빚이 쌓였는가”를 법원과 파산관재인에게 납득시키는 일이었습니다. 4억 원이라는 금액은 결코 작지 않고, 설명이 부족하면 채무의 성실성 자체가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복잡한 의료 이력을 시계열로 정리했습니다. 2007년 복막투석 시작 → 10년간 하루 4회 투석 → 2017년 신장이식 → 6개월 만의 거부반응 → 1년 이상의 입퇴원 반복. 이 흐름을 진술서에 상세히 담아, 채무가 늘어난 시점과 치료가 집중된 시점이 정확히 겹친다는 사실을 보여드렸습니다. 빚이 늘어난 것이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결과였음을 소명한 것입니다.
둘째, 농지 담보대출과 매각 경위를 빠짐없이 밝혔습니다.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이후 매각한 이력은 파산 사건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대출금의 용처가 생활비였다는 점, 매각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채무를 줄이려 한 시도였다는 점을 자료와 함께 정리했습니다.
셋째, 무상거주 사실을 거주관계진술서로 명확히 소명했습니다. 지인 소유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 말로 전해서는 부족합니다. 임차보증금 같은 환가 가능 재산이 숨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했고, 이를 서면으로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넷째, 채권자목록의 오류를 직접 찾아 바로잡았습니다. 제출된 채권자목록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 금융기관의 채권이 중복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2023년 1월 채권자목록 변경신청서를 제출해 정정했습니다. 채권 내역의 정확성은 절차 전체의 신뢰와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다섯째, 파산관재인의 자료제출 요청에 세 차례에 걸쳐 성실히 대응했습니다. 2022년 11월, 2023년 1월, 2024년 9월 — 요청이 올 때마다 필요한 자료를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이 사건은 간이파산으로 진행되어 채권자집회를 1회 거쳤고, 파산선고로부터 약 2년 4개월 만인 2025년 3월 10일 면책허가결정을 받았습니다.
수원회생법원은 의뢰인의 채무 409,078,488원 전액에 대해 면책허가결정을 내렸습니다.
10년의 투석, 이식과 거부반응, 그리고 그 위에 쌓인 병원비. 의뢰인이 짊어졌던 것은 잘못된 선택의 대가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치른 비용이었습니다. 그 무게가 이제 0원이 되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생긴 빚은 유난히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치료비가 계속 나가는 동안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못 하니 갚을 수도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나만 이런가” 하는 자책 속에서 신청 자체를 미루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인파산은 갚을 능력을 잃은 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법이 마련해 둔 제도입니다. 재산이 없다는 것, 소득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정이 아니라 오히려 절차에서 소명해야 할 사실에 가깝습니다. 다만 채무가 쌓인 경위와 재산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 소명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고, 개별 사정에 따라 진행 방향도 다릅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려우시다면,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상담받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2026.08.18